아버지 세대는 6월 하면 ‘전쟁’을 떠올린다. 내게 6월은 ‘민주주의’를 떠올리는 뜨거운 달이다. 1987년 이후 한 세대를 통과하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6월은 인상적인 사진 몇 장과 함께 당대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초중고 교과서에는 민주주의를 대변하듯 6월항쟁 사진들이 실려 있고 거의 매년 열리는 다양한 전시회에도 사진들이 등장한다. 사진은 수많은 구호와 연설, 성명서 문건들을 압도하는 상징성으로 6월의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다만 사진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순간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소통 미디어 중에는 언어처럼 아주 오래된 것도 있고 사진처럼 이제 발명된 지 200년이 채 안 되는 것도 있다. 민주주의가 발명된 2000년 전 그리스 아고라에서는 언어가 강력한 도구였다면 근대 민주주의가 재발명된 200년 전에는 사진이 있었다.
일찍이 발터 베냐민은 사진 같은 기계복제가 가능한 예술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는 미디어라고 간파했다. 그는 유일성의 원본만이 아우라를 갖는 예술지상주의에 맞서 민주화된 (사진 같은) 예술로 파시즘에 대적할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사진과 민주주의를 논한 첫 목소리였을 듯하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과 같은 민족해방 운동, 청년들의 68혁명 등 20세기 내내 사진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미디어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사진의 위상을 보면 민주주의에 이바지하는 미디어의 소명을 여전히 다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진이 TV를 거쳐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미디어인가에 대한 회의가 많지만, 디지털 기기의 발전과 보급, SNS의 확산은 사진을 더욱 많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사진의 특성까지 겸비했다. 하지만 베냐민의 이야기처럼 정치적인 민주화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저널리즘 사진의 경우, 20세기에 비추어 훨씬 강화된 우익 이념을 전파하는 언론매체에 장악되었다. 우익과 진보의 국내 언론사 장악 비율인 80대 20은 사실 세계적인 경향이다. 언론사 대다수가 대자본의 광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예술사진이라 불리는 순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 역시 미술관 진입을 위해 미술품 자본에 종속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진의 무한 복제성은 사라지고 구매자 요구에 맞춰 단지 두세 장의 에디션만을 만드는 경우도 심심찮다. 대중 사진 분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제적 민주화의 이면에는 또한 누구나 사진을 유포할 권리가 배제된다. 플랫폼을 거느린 대자본의 취향에 맞게 성장한 셀럽과 인플루언서들은 대중 사진 유통망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확대한다. 21세기 사진은 자본의 사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로 인해 쇠퇴와 새 생명을 동시에
사진의 진화 단계를 살펴보면 19세기 발생에서 성장기까지 매우 폭발적인 사회변화를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사진은 모든 인민에게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민주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21세기 사진은 디지털로 인해 쇠퇴와 새 생명을 동시에 얻은 것 같다. 하지만 진화가 진보가 아니듯 사진도 과거와 같은 길을 가리란 보장이 없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미얀마인들이 일상의 오락을 위해 그렇게 열광하던 스마트폰으로 군부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실어 나르리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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