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상위 10개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 18.4명, 중등 19.5명이다. 지난해 경기도 중학교 절반의 학급당 학생 수는 31명 이상이었다. ⓒ쉘코리아 제공

2003년이었다. 6학년 담임으로 발령받아 교실에 가니 텔레비전 받침대 뒤쪽으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매가 쌓여 있었다. 며칠 뒤 그 교실을 사용하던 선생님은 “신규니까 이런 거 없겠네. 필요할 거예요”라며 매 2~3개를 남겨두면서, 도장도 줄 테니 가지러 오라고 했다.

교실에서 매와 도장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는 40명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앉아 긴 시간 내 말을 듣게 해주었고, 도장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숙제에 빠르고 권위 있게 내 인장을 남겨주었다. 수업 시간에는 매를 잡고 아이들 눈을 바라봤고 수업이 끝나면 도장을 든 채 아이들 숙제를 쳐다봤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인 교육과정 운영권과 평가권이 매와 도장으로 완성되던 시절이었다.

16년이 지나, 2019년 우리 반 학생 수는 19명이었다. 20명 안 되는 아이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칠판을 바라보고 있던 책상을 돌려 서로를 바라보도록 네모꼴로 배치했다. 수업 시간 질문을 던진 뒤 교사의 권위로 발표자를 선정하는 행동을 멈추고 돌아가면서 모두의 생각과 의견을 들어보았다. 하루에 두 명씩 진행하던 상담도 하루에 한 명씩 여유 있게 만났다. 아이들이 제출한 과제는 보충·수정해야 할 부분과 잘 해낸 부분에 대해서 글로 적어주거나 말로 피드백해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즐거움은 글쓰기 공책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필담이었다. 내 댓글에 댓글을 다는 아이, 내 댓글을 보고 다가와 조잘조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 필담은 아이들과 나를 더욱 친밀하게 연결해주었다. 2003년 40권의 공책을 앞에 두고 도장을 들까 펜을 들까 갈등하던 나는 이후에 학생 수와 업무량에 따라 도장과 펜을 번갈아 썼지만 2019년에는 갈등하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이 왔다. 우리 반 학생 수는 17명. 2월 더 큰 기대를 품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모둠 활동, 프로젝트 수업, 체험학습. 무엇을 계획하든 마음이 가벼웠다. 17명이라면 작년보다 더 친밀하고 알차게 보낼 수 있겠다 기대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찾아왔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집에 갇혔고 나는 텅 빈 교실에서 계획했던 교육 활동을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1년. 우리 아이들에게 벌어진 일을 지켜보며 나는 재난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최대치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호자가 모두 출근하고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아이들을 전화로 깨워야 했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고 학습 결손은 차근차근 누적되었다. 혼자여서, 귀찮아서, 먹을 것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점심을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오전 내내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핸드폰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핸드폰 중독 상담을 연결해달라는 보호자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력이 떨어져 안경을 쓰는 아이가 늘어났고 살이 찌고 관절이 약해져 그나마 며칠 되지 않는 등교일에 마스크 쓰고 살살 하는 체육 수업에서 쉽게 지치고 다쳤다. 쉬는 시간 멍하니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지난 4월19일 서울시 염리동 한서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학부모들이 '과밀학습 해소'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자는 것 말고는 다 귀찮다며 얼굴에 표정을 지우고 입을 닫아버린 아이와, 친구가 유튜브 채널 구독 신청을 취소했다는 이유로 욕 폭탄을 날린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날, 나는 아이들이 세 자릿수 나누기 두 자릿수 문제를 못 푸는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재난이 아이들에게 남긴 가장 큰 흔적이 학습 결손이라는 생각은 게으른 판단이었다. 무기력과 폭력 사이를 롤러코스터 타듯 멀미나게 오가는 아이들. 위태로웠다.

학급당 10~15명으로 제한한 독일·프랑스

학교가 제구실을 못하는 동안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급격히 시들었다. 보호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불안하고 안 보내면 괴로워했다.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에서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교실 수업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그렇게 지난 1년을 보내고 우리는 온라인 수업이 학교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회적 깨달음에 도달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학교를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에는 돈이 들어가지만 이 비용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때 들어갈 비용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1700억 달러 예산을 배정했다. 독일은 학급당 학생 수를 반으로 줄여 한 교실에 머무는 학생을 10명으로 제한했다. 프랑스는 당분간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를 각각 10명과 15명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캐나다는 교육부가 신규 교사 고용과 학급 규모 축소를 위해 1억 달러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많은 나라가 코로나19 시대 학급당 학생 수를 낮추는 데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OECD 상위 10개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 18.4명, 중등 19.5명이다.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2020학년 현재 경기도 중학교 학급의 45.6%인 5771학급이 학생 수 31명 이상이다. 2020년 초중고 평균 등교 일수는 전국 93.6일인데 서울 지역은 53.6일이다. 그 와중에 서울·경기 지역의 과학고등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 평균 15명으로 전면 등교를 했다. 재난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았고 학생들은 학습과 사회관계로부터 덜 고립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앞장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 법제화’를 외치는 이유다.

지난 3월23일 서울 국회 앞에서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 법제화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문을 열 수 있고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떤 재난과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시대에 아이들을 보호하는 최소의 장치이자 최후의 보루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 ‘학급당 적정 학생 수’일 것이다.

교육부는 ‘그린 스마트 스쿨’ 사업과 AI 교육 등 미래 교육을 이야기한다. 교원 백신접종 완료와 방역 강화를 바탕으로 9월 전면 등교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학급당 학생 수 감축에 대한 논의는 장기 과제로 미뤄뒀다.

생각해보자. 코로나 2년 차, 온라인 수업과 고립된 생활 속에서 피폐해진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학교 시설과 AI 서비스일까? 아니면 학생으로 꽉 차 방역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만 있어야 하는 교실을 조금 더 ‘밀도 낮게’ 만들어주는 일일까?

재난 상황에서 성장을 유예당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선물은 마음껏 뛰어놀 운동장, 점심시간 갓 지은 따뜻한 밥, 손 뻗으면 닿는 곳에서 날 바라보는 친구들, 더 넓고 재미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수업, 그리고 매와 도장이 아닌 아이들의 안녕과 성장을 빌어주며 지켜봐주고 지원해주는 선생님이다. 이런 것들의 기반을 만들어줄 수 있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 법제화’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이다.

기자명 구자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육희망> 편집실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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