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 박멸에 앞장섰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EPA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립하게 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도미노처럼 군사 쿠데타의 망령에 시달렸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도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군부 세력에 의한 봉기였고 우익 장군 수하르토에 의해 진압됐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자, 제3세계 운동의 지도자였던 수카르노는 이 일로 인해 축출되고 수하르토 소장이 집권했다.

수하르토 소장은 쿠데타의 배후로 당시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공산당 조직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지목했고 이어서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박멸에 돌입한다. 한국의 제주 4·3이 그랬듯 공산주의자냐 아니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이 학살은 앞으로 이어질 철권통치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섬 인구 200만명 중 10만명 이상 학살

1965년부터 1966년에 벌어진 전국적인 색출과 학살로 인한 사망자는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50만명에서 3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50만명 정도 사망했다고 추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 하비비 전 대통령은 100만명이라고 했고, 학살을 지휘한 사르워 에디 위보워 장군은 300만명이라고 말했다. 사망자 숫자조차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5·18이 당당한 역사로 기록된 한국과 달리 1965년의 인도네시아는 아직 제대로 된 조사는커녕 역사적 기술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체, 자바섬, 그리고 발리에서 벌어진 학살이 가장 끔찍했다. 이런 난리 통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그 나라에서도 제일 소외된 지역이다.

우리에게 휴양지로만 알려진 발리는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것도 인도계 이민자에 의한 전파가 아닌 현지 주민이 믿는 토속 힌두교다. 힌두교권이다 보니 당연히 카스트 제도도 존재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모든 면에서 마이너리티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제주 4·3 때처럼 잡히는 족족 즉결 처형을 당했다. 총살이면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사람들은 산 채로 사지가 절단됐고, 참수되기도 했다. 몇몇 증언에 따르면 산 채로 피부를 벗기는 식의 죽음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잔인한 방법도 공공연히 사용됐다. 학살은 대부분 자경단에 의해 벌어졌고, 자경단은 공산주의자들이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죽인다는 정부 측의 거짓 선전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러니 제대로 된 재판을 거쳤을 리 없다. 그저 지목된 사람이 끌려 나와 자신에게 덧씌워진 혐의를 반박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다. 섬 인구 200만명 중 10만~20만명이 학살됐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의 죽음이 낙원이라고 칭송받는 이 섬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가해의 자리에서 정부는 쏙 빠져버렸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은 양쪽의 시민들이 나눠 가졌다.

사망자 수가 크게 차이 나는 건 아직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이게 현실이다. 종종 발리 뉴스를 검색한다. 이제는 350만명이 사는 이 섬에 핏빛 가득한 역사가 존재하건만, 우리의 뉴스는 ‘발리에서 지내는 어느 연예인의 숨 막힐 듯한 뒤태’ 말고는 관심이 없다. 종종 발리 이야기도 써보려고 한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