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제 책이 왜 ‘오후 1시’로 시작했을까요?” 줌 화상회의 도중 필자가 돌발 질문을 던졌다. 〈시사IN〉과 전국의 동네책방 28곳은 올 상반기 책 세 권(〈공정하다는 착각〉 〈가난의 문법〉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읽는 당신×북클럽’을 운영 중이다. 그중 두 번째 책인 〈가난의 문법〉 온라인 북토크가 지난 5월4일 열렸다.

필자 소준철씨(사진 오른쪽)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맨 먼저 놀란 것이 오후 1시의 골목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은 일터에,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을 그 시각, 가난한 동네 골목을 채운 것은 노인들이었다. 현장에 나가보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노인의 시간’이었다.

이날 북토크에서 소씨는 ‘1945년생 윤영자씨’라는 책 주인공(가상 인물)이 겪고 있는 노인의 시간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펼쳐 보였다. 첫 번째는 ‘가난한 노인들의 선진국’. 명목 GDP 규모로 따졌을 때 한국은 OECD 국가 중 9위다. 그런데 빈곤율을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17세 이하 또는 18~65세 상대적 빈곤율은 한국이 미국·일본보다 낮다. 문제는 66세 이상. 이들의 빈곤율은 44%로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위다. 나라 경제 상황은 제법 좋은데, 노인 세대에 빈곤이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가난’. 한국 사회에 넝마주이, 양아치는 더 이상 없다. 쪽방은 일부 존재하지만 달동네도 사라졌다. ‘가난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가난이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고 소씨는 말한다. 극심한 가난이 사라진 대신 가난은 숨어버렸다. 새벽 4시, 오후 1시, 밤 10시 골목을 돌며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의 모습으로.

나이 들어도 끝나지 않는 ‘노오력’

이들 다수는 차상위 계층에 속한다. 장성한 자녀들이 있기에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에서 제외돼 있다. 그렇다고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이 부모를 모실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노인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끝나지 않는 노오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세 번째 키워드다.

네 번째는 ‘가난의 할머니화’, 곧 빈곤의 여성화다. 똑같이 가난한 노인 세대라지만 할머니들이 처한 조건은 더 가혹하다. 사회구조적 한계 탓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전업 주부로 살았거나 일을 했더라도 공장 최하위 노동자 내지 서비스직 경력이 전부다. 노쇠함이라는 변수까지 추가된 지금, 먹고살려면 카트를 끌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도달한 다섯 번째 키워드가 ‘가난의 문법’이다. 소준철씨는 사회학자로서 이들이 지금에 이르게 된 삶의 경로, 그리고 ‘우연하지만 필연적이었던’ 구조들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한때 중산층이었던 윤영자씨가 가난의 경로로 빠진 결정적 계기는 자녀의 사업자금을 대주기 위해 갖고 있던 집을 판 사건이다. 필자는 그 이면에 IMF 외환위기 이후 각자도생의 사회질서와 가족주의의 모순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국가와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그 시기, 일터에서 쫓겨난 자녀들이 손을 벌릴 곳은 가족밖에 없었다.

독자들은 “열심히 살면 노후가 행복할 거라던 믿음이 흔들린다” “폐품 줍는 일을 가치 있는 노동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필자는 “지금 가난한 노인 개개인을 안타까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사회에 대한 감각을 좀 더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 있는 제도는 미래의 노인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재의 노인들을 보호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가난에 이어 불평등을 주제로 한 ‘읽는 당신×북클럽’ 마지막 북토크는 6월10일 열 예정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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