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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춘천마임축제를 준비하며,‘1미터와 2미터 사이 어딘가’

[특집이슈] 코로나 시대의 일상 에세이 - 춘천

강영규_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제179호

2020.05.14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주 내내 뜨거웠던 열기를 식혀주는 것 같습니다. 참 많이도 요동치고 힘겨운 나날들입니다. 지난주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방침이 생활방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대면 상황에서 거리두기를 전제로 한 대면상황으로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이태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힘든 나날들이 언제 해소될 수 있을지 더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무언가 다시 희망이 샘솟기를 바라봅니다.

저는 춘천마임축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해마다 5월 마지막 주 춘천을 물의 도시로, 불의 도시로, 마임의 도시로 32년간 만들어왔습니다. 2020년 상반기, 모든 공연예술축제가 사라졌습니다만 춘천마임축제는 아직 축제 개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왜 축제를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없는 거고, 내년에 해도 되고, 날 좋을 때 놀면 되는 거니까 ‘지금 같은 때는 하면 절대 안 된다!’, ‘제정신이냐? 보수기독교계의 일방적인 광화문 집회와 뭐가 달라?’ 등 가시 돋친 말들 속에서, 예술과 축제의 가치는 사치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제공하여야 한다.’라는 축제의 존재 이유는 관념적 수사였습니다.

그런데 예술과 축제는 정말 그러한 것일까요? 지난 4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의 전언 중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그 사고가 안겨준 뼈아픈 교훈은 우리가 이 코로나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과연 세월호 사건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수많은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란 포스팅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지금의 이 시기를 마임과 공연으로 기록하고 기억해보자,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며, 공연예술축제가 꼭 해야 할 사회적 책무라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마스크, 의료진, 방역, 드라이빙스루, 베란다 공연, 라이브 스트리밍 등 다양한 방식과 소재가 보이더군요. 여기에 우리의 메시지를 담아보자는 취지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이러한 사회적 지침과 관련된 의도를 갖고 개최를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축제를 하자는 결정을 먼저 내리고, 의도를 찾게 된 경우입니다. 취소 혹은 연기로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니, ‘하자’는 판단 아래, 방법을 찾아보자, 이 시기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4월 시행한 마음배달 서비스 ‘응급놀이키트’ (사진출처_춘천마임축제 페이스북 페이지)
축제를 하겠다는 결정은 의외로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축제 자원활동가들과의 워크숍은 난생처음으로 비대면 온라인 워크숍으로 진행했습니다. 4월부터 시민들을 만나 진행하려던 체험 놀이프로그램은 불가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구입했던 오브제를 ‘집콕’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응급놀이체험 놀이키트’로 구성하여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배달서비스’가 시작되었고, 접수를 받은 지 2시간 만에 완판이 되었습니다. 참여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받은 후원금을 모아 다시 마스크, 세정제, 놀이키트를 구입하여 지역의 작은 아동기관에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5월을 앞두고 대면 공연의 실현 가능한 방법을 구상하게 되었고 야외공연에 활용할 만할 아이템 하나가 개발되었습니다. 거리공연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관객과 관객 간의 거리두기입니다. 공연자와 관객 간 거리는 이미 공연공간을 확보해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만 자유로운 야외 공간에서는, 관객 간의 자연스러운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아래 사진의 물놀이 튜브입니다.

이 외에도 소소한 아이디어가 많이 제안되었습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드라이빙 스루 방식으로 체험 놀이키트를 제공하고, 베란다를 겨냥하여 이삿짐 나를 때 쓰는 스카이차량을 이용하는 공연 방식, 전 출연진이 방역복을 입고 무용수, 광대들과 함께 방역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시민에게 꽃을 나눠주는 퍼포먼스,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한 실시간소통 공연 등 아이템을 종합하여 지금의 시기를 기억할 수 있는 축제 버전 ‘1M와 2M사이 어딘가’를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5월 시행한 거리공연 중 물놀이 튜브좌석
그러나 축제 측의 의지와는 별개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6월 말까지 대규모 지역축제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또한 그러한 판단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역축제라는 말로 모든 축제를 일괄적으로 해석하는 문체부의 지침이 서운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설득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저희 능력은 거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을 때면, 2020 춘천마임축제는 개최 여부가 이미 결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쪼록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이번 축제에 담으려는 메시지를 공유해 드릴까 합니다. 방역 그 이후, 마임으로 기록할 메시지입니다. 5월 마지막 주 축제 현장에서 뵐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의 삶이 강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먹고 살아야한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논리에 우리는 100년 이상의 긴 시간을 사로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목도한, 때론 눈시울이 뜨겁게 깨닫게 된 진실은 ‘인간의 조건은 단순한 생존, 즉 먹고 사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의료진의 헌신은 생과 사라는 인간 본능을 뛰어넘는 그것이었습니다. 단순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많은 의료진의 대구행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무릎 쓰고 그 고통을 감내하며 그들은 묵묵히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 격리, 마스크 등 대면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린 서로의 안녕을 물었습니다. 빨리 이 터널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였겠으나 우린 ‘당신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고 내가 건강해야 당신도 건강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 면역력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란 자본적 사고 대신, 모두가 건강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고민하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인 사각의 시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2020년 춘천마임축제는 코로나로 무너진 지구를 위한 의료진의 헌신과 방역, 만날 순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연대의 시간 속에 먹고 사는 것, 생존 그 이상의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지금은 방역 이후, 그러나 종식 이전의 시간입니다. 팬데믹의 공포감은 그나마 안정되었으나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완전한 복귀를 선언할 수 없는 지금의 시간, 우린 이 시간을 ‘전환의 시간’이라 명명합니다. 지구촌 모두가 동시에 셧 다운 된 엄청난 현실 앞에서 이 현실을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필요는 분명해 보입니다.
무심한 듯 따뜻이, 말 없는 마임으로 이 시간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우리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거기에 작은 희망 하나, 툭 던지려 합니다. 그것은 장미꽃 한 송이일 수도 있겠고, 벽에 갇혀 서러운 몸짓일 수도 있으며, 웃음 가득한 풍선일 수도 있겠습니다. 프러포즈 받고 얼떨떨한 여인처럼, 집에 바로 가지 못하고 싱숭생숭한 시간, 2020년 5월의 마지막을 ‘마임의 시간’으로 채워보려 합니다. ‘무심한 듯 따뜻이’ 함께 걸어주시길 소원합니다.
[편집자주] 5월 12일부로 이달 말 예정되어 있던 춘천마임페스티벌은 취소되었습니다. 춘천마임축제는 코로나19 사태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하며, 새롭고 안전한 프로젝트를 기획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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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규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놀이패 우금치 기획실장과 춘천마임축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다. 여수세계엑스포 거리문화공연 총괄감독과 서울거리예술축제 기획실장, 춘천마임축제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는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gm@mimefestiv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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