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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슈퍼사이클 논쟁]‘자원 슈퍼사이클’ 믿어도 되나…원자재가 올해 정점…2020년까지 내리막길?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2.12.03 09:03:32
요즘 박환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숱한 강의 요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최근 발표한 ‘자원시장 하락 추세로 전환되었나? - 자원 슈퍼사이클(잠깐용어 참조)과 이슈 점검’이란 보고서가 산업·금융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덕분이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최근 2년간 석유 가격은 최고점 대비 약 20%, 석탄은 약 40%, 구리는 약 18%, 옥수수는 약 10% 가까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연구원은 ‘그간 가격 상승세를 보여 왔던 자원은 2012년을 정점으로 2020년까지 점차 하락할 것’이란 논지를 폈다. 2000년대 들어 자원 가격은 줄곧 오를 것이란 전망에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선 신선하다는 평이 많다.

반론도 만만찮다.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아카데믹한(학술적인) 접근이며 미국, 중국 경제가 회복하면 자원 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접어들 것’이란 논리다.

업계에서는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삼성경제연구소 발표 후 ‘자원 슈퍼사이클’ 논쟁이 본격 점화했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박 연구원과 정반대의 전망 자료를 발표한 강유진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는 “분명한 건 자원 가격 상승과 하락 전망이 이처럼 엇갈리는 사례는 최근 수년간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 전망부터 양측은 다르게 본다.

하락세를 주장하는 쪽은 세계 경기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어 향후 7~8년간 자원 가격이 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신흥시장부문 대표는 “중국 성장 둔화로 원자재 가격이 향후 20년간 하락할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상승 지속 전망론자들은 중국과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양상은 달라질 것이라 맞선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이 일시 주춤하지만 얼마든지 성장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고 미국 경제 역시 회복세를 보이기 때문이란 논리다. 이를 바탕으로 두 나라 모두 국내외 투자를 늘리면 결국 자원 소비 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달러, 주식, 채권보다 농산물, 원자재가 유망한 투자대상이며 셰일가스 붐은 조만간 끝날 것”이라 말했다.

중국 경제 회복에 달렸다

양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지표 역시 차이를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건 지표는 실질자원평균지수. 세계은행의 원자재지수(commodity Index) 중 에너지, 비에너지 지수를 실질가격으로 환산해 그래프로 만들었다. 이 지수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총 3차례 슈퍼사이클이 진행됐다. 1차 슈퍼사이클은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유럽의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이 못 받쳐주면서, 2차는 1970년대 석유파동 등으로 공급 부족이 빚어지면서 촉발됐다. 현재는 중국 고성장 여파로 3차 슈퍼사이클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분석 결과 2012년이 사실상 가격 최고점에 근접했다는 주장이다.

반론을 펴는 쪽이 예로 드는 건 톰슨로이터 CRB(Commodity Research Bureau)지수(CCI)다. 이 지수는 상품 가격 조사회사인 CRB사 자료를 바탕으로 톰슨로이터가 17개 원자재 선물 가격을 동일한 비중을 부여해 평균값을 상품지수로 뽑아낸 것. 강유진 애널리스트는 ‘왜 원자재인가?’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 지수를 언급하며 “지난 50여년간 원자재 가격은 꾸준히 올랐으며 2006년과 2009년에 급상승하는 이른바 ‘가격 붐’ 현상을 보였다. 11월 기준 지수가 하락했지만 주기상 가까운 시일 내에 3차 붐이 일 것이며 이런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인 유동성을 두고도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여파로 자본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있는데 결국 이 돈이 원자재 투자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드세다. 이석진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자재 시장은 시장을 자극할 만한 동기(재료), 현물 시장에서의 수급 상태, 그리고 글로벌 경기로 가격 상승 여부를 판단하는데 그중 글로벌 경기가 현재 바닥권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한다. 조만간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면 시중 자금은 채권, 주식 다음 원자재로 몰릴 것이란 주장이다. 로버트 애스핀 스탠다드차타드그룹 주식투자자문본부장도 “미국이 실업률을 낮추려 시중에 돈을 풀면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려 한다. 이런 돈이 원자재로 유입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격 상승 종료’를 주장하는 쪽은 자원 공급과잉이 장기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투기자본이 원자재를 투자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반박한다. 박환일 수석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올랐던 건 투기자본의 영향도 컸다. 그런데 지금은 투기 수요를 조장할 재료나 동인이 적다 보니 투기자본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베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들어 각국 헤지펀드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에 베팅(풋옵션 매입)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도 덧붙였다.

SC “돈 넘쳐나 인플레 조짐”

반면 양측 모두 금과 농산물 가격이 대체로 오를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금은 산업 현장에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원자재의 하나로 분류된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이 성장 둔화 국면에서도 소비량은 꾸준하다. 로버트 애스핀 본부장은 “금과 일반 원자재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원유, 비철금속 등은 경기에 영향을 받지만 금은 호·불황과 관계없이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곡물 등 농산물 역시 기상 이변 등으로 공급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어 언제든 상승 가능성이 있다. “농산물은 슈퍼사이클상 정점이 멀었다”고 박환일 수석연구원은 분석한다.

잠깐용어 *자원 슈퍼사이클
자원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다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주기적 현상을 뜻한다. 통상 한 주기를 20~30년으로 본다. 여기서 자원이란 에너지, 비철금속, 곡물을 지칭한다. 귀금속은 제외됐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개발한 실질자원평균지수를 바탕으로 추출했다.

상승한다 : 로버트 애스핀 스탠다드차타드그룹 주식투자자문본부장

신흥국<중국·인도> 회복해 덩달아 오를 것

Q. 원자재 가격이 궁극적으로 올라갈 것이라 주장하는데.

A. 구리, 석탄, 아연 가격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중국 경기 둔화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향후 중국은 1년 내엔 중립, 이후 다시 성장세를 탈 것으로 본다. 이럴 경우 주식 시장이 활성화되고 동시에 석탄과 구리 가격 역시 본격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14년 이후엔 중국에 이어 인도 경제도 회복돼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장기적으로 가격 상승세가 가속화될 것이다.

Q. 중국 외 나머지 국가들 저성장은 변수 아닌가.

A.물론 미국, 유럽의 재정위기는 계속 세계 경제에 주름을 지울 것이다. 하지만 돈의 흐름만 놓고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특히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강한 달러를 지향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실업률을 낮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더욱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곧바로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주택 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 않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더라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도, 일본도 이런 추세에 동조한다. 결국 이렇게 풀린 돈이 원자재로 유입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일차적으로는 금이 가장 큰 수혜주가 될 것이다.

Q. 주식 중에서도 에너지 관련주를 주목하라고 했는데 이유는.

A.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통화는 추가 절상될 것이다. 수출 중심의 한국 기업들이 영향 받을 거라 하지만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탄탄하다. 한국 주식 시장에 추가 매수 기회가 있다고 본다. 이때 주목할 건 제조업, 그중 일부 자동차 관련주와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다. 저평가됐고 국제적인 경쟁력도 갖추고 있어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면 단기간에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하락한다 : 박환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중국 특수도 효과 없을 것

Q. 왜 원자재 가격 사이클이 하락세로 돌아선다고 예상하나.

A.그간 시장은 늘 자원 가격은 오를 것이란 관성적인 생각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이건 2000년대 초반 얘기다. 과거만큼 중국과 인도 경제가 활성화돼 수요가 넘친다든지 아니면 석유쇼크처럼 공급이 달리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물론 자원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겠지만 공급 증가율이 더욱 높아 가격이 급등할 여지는 적다.

Q. 중국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오를 거라고도 하는데.

A.중국 정부가 50%대에 불과한 도시화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하니 그런 기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자원 가격 하락을 일부 막을 수는 있어도 상승세로 전환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그간 주력이었던 수출주도형 산업의 성장세가 미국, 유럽 저성장으로 예전만 못하지 않나. 아무리 도로 깔고, 철길 놔도 수출 경기가 안 풀리면 폭발적인 자원 수요를 기대하기 힘들다. 단 에너지나 곡물 쪽은 중국 중산층이 증가하는 만큼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가격이 오름세를 보일 수 있다.

Q. 자원 가격 하락세는 한국에 호재인가, 악재인가.

A.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우리는 슈퍼사이클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MB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자원 개발에 상당히 힘을 쏟았다지만 슈퍼사이클상 가격 상승기에 투자했다 보니 ‘고비용·저수익’ 구조를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 지금은 다르다. 대세 하락기 때 집중 투자하면 다시 상승기를 맞을 때 큰 결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스위스 글렌코어는 자원 시장 약세 시기였던 1990년대 남미,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 집중 투자해 세계 최대 원자재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벤치마킹할 때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 /사진 : 박정희, 류준희 기자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4호(12.11.28~12.04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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