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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실명제' 헌법소원 각하…재판관 4명 "위헌" 팽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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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배석해 정부의 암호화폐 관련 긴급대책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배석해 정부의 암호화폐 관련 긴급대책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뉴스1

정부가 2017년 말부터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가상계좌 신규 제공을 중단하고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시행한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5일 정부의 암호화폐 관련 긴급대책 등 위헌확인 사건에서 “당시 조치가 헌법소원 대상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금융위원회는 2017년 12월 전국적으로 암호화폐 투자 과열 현상이 나타나자 시중은행에 암호화폐 가상계좌 서비스의 신규 제공을 중단해 달라는 조치 등을 취했다. 금융위는 또 2018년 1월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하면서 암호화폐 실명제를 도입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로 당시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했다. 이에 변호사 A씨는 "당시 약 2000원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했다가 150원 가량의 손해를 입었다"며 암호화폐 투자자들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정부의 규제 조치로 암호화폐 교환가치가 떨어져 재산권·행복추구권·평등권 등이 침해됐다"며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실시'는 국회 입법과정을 통해서만 도입돼야 함에도 그런 과정 없이 도입돼 법률유보원칙 등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정부의 조치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 사건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다수 의견 재판관들(유남석·문형배·김기영·이석태·이미선 재판관)은 "정부 조치는 금융기관에 방향을 제시하고 자발적 호응을 유도하려는 일종의 단계적 가이드라인"이라며 "당국의 우월적 지위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제된 것으로 볼 수 없고 나아가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모두 부적법하다"고 설시했다.

반대 의견도 팽팽했다. 재판관 4명(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정부 조치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시중은행이 정부 조치를 따르지 않으면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만큼 단순 행정지도가 아닌 구속적 성격이 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다"며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정부의 해당 조치는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소수 의견 재판관들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과 관련한 중요 사항의 정책 형성 기능만큼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된 입법부가 담당해 법률의 형식으로써 수행해야지 행정부·사법부에 그 기능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다른 기본권 침해 사건과 달리 진보 성향의 재판관들이 모두 각하 의견을 냈고, 오히려 보수·중도 성향의 재판관들이 위헌 취지의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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