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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 하려다 도쿄 침몰…"리얼하다" 난리난 日드라마[도쿄B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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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챙겨보는 일본 드라마가 생겼습니다. TBS가 10월에 시작한 '일본 침몰-희망의 사람'(한국 제목은 '일본 침몰 2023')이란 작품입니다. 모처럼 등장한 대형 히트작에 일본도 떠들썩한 분위깁니다. 드라마는 1회 시청률 15.8%를 기록하더니, 2·3회도 15.7%로 순항하고 있습니다.

일본 T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 [사진 TBS]

일본 T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 [사진 TBS]

'일본 침몰'은 1973년 고마쓰 사쿄(小松左京)의 SF 소설이 원작입니다. 당시 4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1970년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건 2006년 '초난강'으로 알려진 구사나기 쓰요시(草彅剛)가 주연한 영화일 겁니다. 2020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습니다.

'지진의 나라' 일본은 유라시아판(플레이트)과 태평양판, 필리핀판 등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해있죠. '일본 침몰'은 대규모 지각 변동으로 일본에 역대급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연쇄 폭발하며 일본 열도가 바다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지만 일상적으로 지진을 겪는 일본인들에겐 허무맹랑한 공상만은 아니기에 이 작품이 '고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일본 수도권이 6개월 내 가라앉는다면?

이번에 공개된 TBS판 '일본 침몰'은 사실상 '간토(関東) 침몰'입니다. 간토 지역은 일본의 수도인 도쿄(東京)도와 가나가와(神奈川)·지바(千葉)·이바라키(茨城)·도치기(栃木)·군마(群馬)·사이타마(埼玉)현 등 인근 지역을 말합니다. 일본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진 중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수도권 직하형 지진'과 '난카이 대지진'입니다. 둘 다 간토 지역에서 발생하는 규모 8 이상의 대형 지진으로 일본 정부 추산 수만명의 희생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2006년 영화 '일본침몰'에서 대지진으로 도쿄의 고층빌딩이 무너지는 모습. [영화 스틸사진]

2006년 영화 '일본침몰'에서 대지진으로 도쿄의 고층빌딩이 무너지는 모습. [영화 스틸사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일본침몰2020'에서 도쿄 시내가 불타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일본침몰2020'에서 도쿄 시내가 불타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는 이런 간토 지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를 '리얼하게' 자극합니다. 일본 매체들도 "지금까지의 리메이크 중 가장 현실감 있다"는 평을 내놓고 있죠. 우선 지진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든 게 그렇습니다. 시작은 일본 총리(나카무라 도오루)가 세계환경회의에서 "2050년까지 일본의 실질적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입니다. 다음 달 1~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를 떠올리게 하죠.

일본 정부는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원 '셀스틱'을 해저에서 뽑아내 이를 활용한다는 'COMS(콤스)' 계획을 발표합니다. 원작에도 나오는 천재 과학자 다도코로 박사(가가와 데루유키)는 이 계획이 불안정한 플레이트를 자극해 슬로 슬립(Slow Slip·한쪽 판이 다른 쪽 판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촉발한다고 경고합니다. 이로 인해 "간토 지방이 6개월 안에 바다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게 되죠.

4000만명을 피난시켜라

간토 침몰에서 국민들을 지키려면 이 지역에 사는 4000만명을 피난시켜야 합니다. 황당하죠. 하지만 일본인들에겐 현실적 공포입니다. 실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TBS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의 주인공인 환경성 관료 아마미(오구리 슌)와 간토 침몰을 예견한 다도코로 박사(가가와 데루유키). [사진 TBS]

TBS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의 주인공인 환경성 관료 아마미(오구리 슌)와 간토 침몰을 예견한 다도코로 박사(가가와 데루유키). [사진 TBS]

동일본대지진 10주년을 맞아 지난 3월 만난 간 나오토(菅直人) 당시 일본 총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후쿠시마(福島) 원전에서 연쇄 멜트다운이 일어나 일본 전역으로 방사능이 퍼질 경우 "도쿄와 수도권을 포함해 원전 반경 250㎞ 이내 5000만명이 피난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했었다"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국민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일본 침몰'이 "재난 드라마가 아니라 정치 드라마"라는 평을 받는 건 이 때문입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주인공 아마미(오구리 슌)는 환경성의 젊은 관료입니다. 다도코로 박사의 '간토 침몰설'이 근거가 있다고 확신하고 국민에게 위기를 알리자고 총리와 다른 부처들을 설득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 보신주의에 번번이 가로막힙니다.

한국 드라마 '넷플릭스 협업 모델' 도입 

눈 앞에 닥친 재난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한 정치인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많이 본 장면이라 허구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총리는 사실상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로, 당내 최대 파벌을 이끄는 사토시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시바시 렌지)에 휘둘리기만 합니다.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릅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일본침몰2020'. [사진 넷플릭스]

지난해 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일본침몰2020'. [사진 넷플릭스]

홀로 고분분투하는 아마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이 나라는 다테마에(겉치레)만 가득하고 옳은 일을 하려면 장애물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인터넷 매체 데일리신초는 '일본 침몰'의 인기를 이렇게 평합니다. "현실의 관료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관료의 이상형(아마미)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 침몰'은 일본 방송사 제작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본편 방영 3시간 후 넷플릭스 방영'이라는 한국 드라마의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넷플릭스는 10억엔(약 103억원)에 세계 판권을 사 190여 개국에 전달합니다.(한국 넷플릭스에선 아직 공개 전)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드라마의 대성공에 자극받은 일본이 '가장 일본다운 이야기'로 도전장을 던진 모양새인데, 세계 시장에선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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