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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방치로 내전 위기, 출구 안 보이는 ‘피의 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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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10면

미얀마 쿠데타 100일

미얀마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오는 11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100일을 맞지만 사태 해결은커녕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미얀마 인권 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군경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사망한 시위자는 769명에 달한다. 지난 2일에도 양곤 등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해 최소 6명이 숨졌다. 군부에 의해 구금된 정치인도 4700명을 넘어섰다.

769명 사망, 사태 악화일로 #소수 민족 가세한 민주 진영 정부 #시민군 창설, 군부에 대항 무장화 #군부 학살 행위 ICC 제소도 추진 #미·중 엇박자에 유엔 대응 어려워 #아세안도 신중, 사태 장기화 우려

그런 가운데 미얀마 내 민주 진영과 소수 민족 반군 세력들이 힘을 합해 임시정부격인 국민통합정부(NUG)를 수립한 데 이어 자체적인 군사 조직까지 갖춘 뒤 군부 타도를 외치고 나서면서 미얀마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국민통합정부가 ‘시민 방어군’을 창설하며 군부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고 나섰다”며 “군부의 폭력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군사 정권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통합정부는 군부 학살 행위와 관련한 증거를 수집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석 달 넘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에서는 반군부 시위는 물론 군사 정권과 반군부 세력의 물리적 충돌 또한 격화되고 있다. 미얀마에는 현재 20여 개 소수 민족이 결성한 무장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자체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3일 북부 카친주에서는 반군 무장 조직인 카친독립군(KIA)이 바모 지역에 있는 경찰서를 공격해 서장이 사망했다. 카친주를 공습한 정부군 헬리콥터가 반군에 의해 격추되기도 했다. 지난 4일에는 바고 지역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소속 지역구 의원 등이 폭탄 테러로 숨졌다. 남동부 카렌주에서는 정부군의 공습으로 2000여 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긴급 피신했다. 이 지역에서는 현재 카렌민족연합(KNU) 반군이 미얀마군과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국제사회도 미얀마 사태가 내전으로 비화하는 상황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지난 5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폭력이 격화돼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는 좀처럼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 폭력 사태 중단이란 대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주장하는 데 비해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도 지난 5일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대응을 강력히 규탄하며 “수치 고문 등 체포된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고 민의에 의해 선출된 민주 정부로 정권을 이양하라”고 촉구했지만 뾰족한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국제사회의 대응이 지지부진하자 유엔 외교가에서는 “결국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리더격인 미국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총대를 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미 상원은 미얀마 군부의 돈줄을 끊기 위한 강력한 제재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 등 6명도 최근 미얀마 정부의 외화 자산 동결과 국영 석유가스회사(MOGE)에 제재를 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미얀마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외국 합작사들이 MOGE에 수익 배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에서 석유·가스 등 천연자원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제재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국제사회가 한 국가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미얀마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도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자 미얀마 군부도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권을 이양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에도 변함이 없는 상태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27일 “상황이 안정된다면 (권력 이양 등 국제사회의) 건설적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 정상회의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 방안을 내놓은 데 대한 원론적인 입장 표명일 뿐이었다.

AP통신은 “미얀마 군부가 동남아 주변 국가들의 요구에 ‘고려하겠다’는 반응만 내놓은 것은 당분간 권력을 내놓을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며 “앞으로도 군부가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놓을 가능성은 극히 작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아세안 정상들이 폭력 중단과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정치범 석방 등 민감한 현안은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아세안 국가들이 서로에 대한 내정간섭을 극히 꺼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얀마 내 소수 민족 문제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당장은 민주 진영과 소수 민족 반군이 반군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뭉쳤지만 향후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군부가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게 될 경우 ‘소수 민족 자치권 확대’라는 미얀마의 해묵은 이슈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국민통합정부의 한 축을 맡은 소수 민족 세력들은 벌써부터 폭넓은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민주주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미얀마는 135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 2017년엔 로힝야족에 대한 대량 학살로 국제사회의 큰 비난과 제재를 받기도 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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