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여인은 영원하다…‘세계의 클래식 브랜드’

  • 입력 2006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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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닮은 검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의 모델만을 기용했다는 중년의 가브리엘 샤넬. 그는 패션을 통해 여성의 몸과 마음을 전통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의식의 디자이너’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신과 닮은 검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의 모델만을 기용했다는 중년의 가브리엘 샤넬. 그는 패션을 통해 여성의 몸과 마음을 전통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의식의 디자이너’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어디에다 맹세를 할까? 아! 샤넬 슈트!”

21세기 패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여주인공 캐리의 몸을 감싼 최신 브랜드는 모두 ‘명품’반열에 올랐다.

드라마 배경인 뉴욕의 패션은 ‘패션 본고장’파리의 명성을 위협하며 세계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뉴욕 멋쟁이 캐리도 프랑스 전통 명품인 이 브랜드 앞에만 서면 약해졌다. 바로 샤넬이다.

요즘 커플들은 사랑의 맹세를 할 때 나무나 바위를 ‘증인’으로 택하곤 한다.

패션에 죽고 사는 캐리의 선택은 샤넬의 트위드 슈트.

샤넬 슈트는 변치 않는 ‘클래식’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샤넬의 클래식이 어디 트위드 슈트뿐인가. 금색 체인이 달린 퀼팅 핸드백,주렁주렁 내려오는 진주 목걸이,심플한 블랙 드레스….

나이 먹은 재클린 케네디도,청순미 넘치는 미샤 바턴(미국의 하이틴 스타)도 깔끔하게 소화해내는 게 샤넬 스타일이다.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가브리엘 샤넬의 유명한 말처럼 샤넬의 스타일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샤넬의 역사는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이었다. 요즘 같은 ‘스타 마케팅’은 필요 없었다. 샤넬의 짧은 머리가 미디어에 포착되면 다음 날 파리 시내 미용실은 ‘샤넬 스타일’을 요구하는 여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샤넬 자신이 ‘스타’였던 셈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초라했다. 12세 때 떠돌이 장사꾼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밤무대 가수로 전전하던 샤넬은 1909년 파리에 모자상점을 냈다. 26세에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가난해도 개성이 넘쳤던 샤넬은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당시 여성들은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고, 치마는 발목까지 늘어뜨렸으며, 모자에는 온갖 액세서리와 새 깃털 따위를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샤넬은 달랐다. 그는 단순함에서 오는 세련미와 실용성을 중시했다. 남성 속옷용으로 쓰던 저지 천으로 심플하고 짧은 블랙 드레스를 만들었다. 여성복에 최초로 바지를 도입한 것도 샤넬이다. 통바지와 멜빵바지, 니트 상의는 오늘날 유니섹스 패션의 원조 격이다.

샤넬 스타일은 시대의 변화에 딱 들어맞았다. 전쟁터에 아버지와 남편, 오빠를 보낸 여성들이 일터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허리를 죄는 코르셋과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는 비현실적이었다. 심플하면서 품위 있는 샤넬 스타일은 ‘신여성’의 상징이 됐다.

‘파리지앵 시크’로 불리는 블랙 톤의 세련된 파리 패션은 샤넬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넬은 마케팅의 천재이기도 했다.

샤넬에게 막대한 부(富)를 안겨준 향수 ‘샤넬 No5’. 그는 본격 판매에 앞서 멋쟁이 귀부인들에게 향수를 몰래 나눠줬다. ‘당신한테만 주는 거예요’라는 속삭임과 함께…. 호의적인 입소문이 퍼지면서 향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급 패션하우스에서 향수를 만든 건 그가 처음이다. 이 히트 상품은 떠오르는 거대시장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샤넬을 알리는 훌륭한 홍보 수단이 됐다.

○ 클래식 vs 트렌드

“샤넬 스타일은 끊임없이 변해야 하는 동시에 영원해야 한다.”(카를 라거펠트)

1983년. 샤넬이 세상을 떠난 지 12년째 되던 해, 샤넬하우스는 새로운 스타일 아이콘을 받아들인다. 독일 출신의 45세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가 주인공이었다.

패션은 늘 새로워야 한다. 그러나 새것만 좇으면 브랜드 고유의 스타일은 사라진다.

라거펠트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답으로 내놓았다. 우아한 중년여성과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세터 아가씨. 샤넬은 두 얼굴의 브랜드다.

1955년 탄생한 ‘2.55핸드백’(금줄이 달린 퀼팅 백)은 요즘도 잘 팔린다. 이런 백은 ‘퍼머넌트 백(영원한 백)’으로 분류돼 하나가 팔리면 하나가 다시 수입돼 일정한 재고를 유지한다. 한국 상류층 사이에서 혼수용품으로 꼽히는 가방들이다.

올가을 신상품 ‘카바백’은 어떤가. 카바백은 엄청나게 큰 사이즈에 번뜩이는 비닐 소재로 만든 백이다. 그 대신 검은색과 금줄, 샤넬 로고로 브랜드 고유 스타일을 유지했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벌써 20, 30대 여성들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샤넬만큼 브랜드 이미지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곳도 드물다. 샤넬 홍보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과거 컬렉션 사진도 줄 수 없단다. 옛날 사진을 내보이는 건 “새롭게 재창조한다”는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웬만한 인터뷰도 사절이다. 샤넬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라거펠트 뿐이다. 일관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패션 라이벌 루이비통 모에헤네시 그룹(LVMH)은 상장과 인수합병을 통해 연매출 139억100만 유로(약 18조830억 원·2005년 기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샤넬은 아직 기업 공개도 하지 않았다. 모든 전략을 꽁꽁 숨기고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씨는 자신의 책 ‘스타일 북’에서 샤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아주 먼 미래에 특수 섬유로 만들어진 우주복을 입은 여성이라도 샤넬의 트위드 슈트만큼은 가장 입고 싶어 하지 않을까.”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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