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빠진 '김부선'에 뿔난 사람들, GTX-D 논란이 놓치고 있는 것

김동인 기자 입력 2021. 6. 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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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강남 직결 노선'을 선호한다. '우리' 지역의 부를 늘리기 위한 노선 유치가 철도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국토를 재조직하고 정의로운 재분배를 입안할 수 있는 공공정책의 수단이 철도다.
철도 노선을 하나 신설하는 데에는 숱한 정치적 논쟁과 협상, 합종연횡이 뒤따른다. 사진은 5월25일 서울역 승강장에 대기 중인 KTX 열차. ⓒ시사IN 조남진

국책 연구기관이 발표한 공청회 자료 하나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4월22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수립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온라인 공청회를 열었다. 문제는 이 공청회에서 제시된 자료가 6월에 정부가 발표할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의 기틀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유튜브 채널(구독자 약 2000명)은 평균 영상 조회수가 1000회를 넘기지 못했지만, 이날 공청회 영상엔 5월27일 현재까지 10만명 넘게 몰렸다.

국가철도망에는 향후 10년간 정부가 추진할 ‘철도 마스터플랜’이 담겨 있다. 이날 발표는 ‘가안’에 불과했지만 지역마다 희비가 교차했다. 지역 언론마다 ‘무엇을 확보하고 무엇을 잃었다’는 식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실망이 큰 지역의 정치인들은 최종 발표 전까지 국토교통부를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다. 당시만 해도 후보자 신분이었던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명장을 받기도 전부터 면담 대상자로 언급되었다.

그런데 철도 역시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처럼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대상이어야 할까? 5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국가철도망 계획이 어느새 ‘정부의 자원을 어느 지역에 배분할까’를 결정하는 복권 추첨 행사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사실 철도망 구축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소한 뒤에야 현실화될 수 있는 사업이다. 이 계획에 포함된다고 해서 곧바로 기공식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국가철도망에 대한 오해는 지역 간 분열과 반목으로 이어지곤 한다. 어떤 이들은 지역 간 불균형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철도역 유치 지역이 부당한 특혜를 얻었다고 비난한다. 철도가 구축되는 정치적 과정을 이해하고, 국가철도망이라는 종합계획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우선 국가철도망의 역할과 기능부터 짚어보자. 정부 측에서 나오는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보통 그 이전까지 논의되었던 노선들을 총괄·정리하는 형식을 취한다. 구축계획은 5년에 한 번씩 나오며 여기에는 이후 10년 동안의 철도망 구축 사업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서에서 정부 측은 도시 간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원칙을 밝혀야 한다. 신설 노선 계획도 공개되는데 지역 주민들이나 정치인 혹은 지자체 차원에서 주장해온 노선이 포함되기도 한다.

2016년에 발표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그해(2016년)부터 2025년까지의 사업계획을 정리하고 있다. 6월 발표되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2030년까지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 계획에 들어간 노선이라고 해서 곧바로 사업이 개시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발표 계획 중에는 2021년 5월 현재까지 첫 삽은커녕 노선조차 제대로 확정짓지 못한 사업도 있다.

철도 노선을 하나 신설하는 데에는 숱한 정치적 논쟁과 협상, 합종연횡이 뒤따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번 공청회 자료에 ‘신설’로 포함된 ‘대장홍대선’이라는 수도권 광역철도 노선이 있다. 새로운 노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지난 제3차 국가철도망에도 포함되었던 계획이다. 경기도 부천의 대장신도시부터 서울시 양천구·강서구·마포구를 가로질러 홍대입구역으로 향하는 광역철도 노선이다.

이 노선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철도교통망에서 소외되었던 부천시 북부(원종동·고강동·대장동) 지역과 서울 신월동(양천구), 화곡동(강서구), 상암동(마포구)을 이어주는 노선으로 주목받았다. 10년 전부터 언급되었지만 아직도 이 노선이 어디까지 향해야 하는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시 강서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지만, 뜻이 맞는 인근 지역에서도 철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차츰 그 범주가 확장됐다. 강서구의 노선 신설 주장에 서울 마포구가 호응하고, 여기에 부천시가 추가 제안을 하면서 부천시 원종동-홍대입구를 잇는 노선안이 주창되었다. 이에 최근 3기 신도시로 선정된 부천시 대장동까지 연결하자는 안이 나왔고 현재는 인천시 계양구·서구 등으로 노선 확장을 주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노선은 대장과 홍대를 잇는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 세부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4월22일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에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GTX-D 원안’이라는 유령

이처럼 국가철도망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최종 노선안이 바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노선안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삽을 뜰 수도 없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하고, 경제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로가 그려진다고 해서 ‘역’까지 확정되는 것 역시 아니다. 해당 노선의 구체적 설계와 추가 정차역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차고지를 어디에 둘 것인지도 논란이다. 대다수 지자체가 철도 노선과 역을 원하지만, 차고지는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차고지 위치에 따라 노선의 경제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자체는 여기 포함된 철도 노선의 완성을 미리 보장하는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 철도망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작업에 가깝다. 한국교통연구원의 4월22일 공청회 자료에도 이 같은 ‘밑그림 원칙’이 설명되어 있다. 자료는 5년 전인 2016년에 수립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다. 노선에 신경 쓰다 보니 차고지를 고려하지 못했고, 고속철도 소외 지역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언급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비수도권 등 광역철도 투자 부족’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이날 발표에서 “비수도권에서 수도권 대비 광역철도 투자가 부족했고, 지역 내 이동 시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했다”라는 점을 언급한다.

지난 4월30일에 한국교통연구원이 추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승용차보다 1.1배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광주권 지역에서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3배 느리고, 부울경 권역에서는 2.2배, 대전·세종 권역에서는 2.5배 더 느린 것으로 계산되었다. 한마디로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자동차가 없는 이들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반성’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동남권(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처럼 ‘지방 광역권을 구축해 비수도권의 인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지방 광역권을 위한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이번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는 충청권 광역철도 확대(대전-세종 연결망),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울산-양산-김해),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 광주-나주 광역철도 등이 주요 사업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세 차례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비수도권의 광역철도 사업이 이번 발표로 활로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가안’이 공개된 이후 오히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곳은 비수도권이 아닌 경기도 김포시였다. 경기도 김포시는 줄곧 김포에서 서울 강남에 이르는 ‘GTX-D’ 노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가안’의 ‘서부권 광역급행철도’는 부천종합운동장을 종착 지점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남까지 직행하기를 원했던 김포시의 뜻이 반영되지 못하자,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었다. 이 반발은 급속도로 인근 지역의 지원사격을 받았다. 인천 서구·중구 시민들은 Y자 형태로 GTX-D를 구축해 자기 지역도 강남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시 등 수도권 동부 지역 주민들은 GTX-D 노선이 하남까지 이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모두의 목표는 ‘우리 지역에서 서울 강남으로 빠른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노선’으로 수렴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결국 “GTX-D를 원안대로 구축하라”라는 슬로건으로 결집하게 된다.

그러나 ‘GTX-D 원안’이란 것은 없었다. 원안은 유령이다. 일단 GTX-D라는 노선 이름 자체가 공식화된 적이 없다. 이들이 말하는 ‘원안’은 경기도가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희망 노선’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10월31일 광역급행철도를 공식화하며 발표한 ‘광역교통 2030’ 계획안에도 “추가적으로, 급행철도 수혜 지역 확대를 위하여 (수도권 지역의) 서부권 등에 신규 노선도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비슷한 내용이 단 한 줄 언급되었을 뿐이다. 정부 당국자 누구도 김포와 강남을 직결하겠다고 단언한 적이 없다. 그러나 GTX-D라는 정체불명 노선이 정치인들의 입김을 타더니 ‘원래 있었던 노선’처럼 공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5월26일 경전철 김포골드라인이 지나는 장기역 사거리에 GTX-D노선 건설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IN 조남진

가장 강력하게 ‘강남 직결’에 힘을 실은 정치인은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 지사는 5월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D 원안 통과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라는 글을 올리며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노선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음에도) ‘축소’되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5월27일 “GTX-D 노선 원안을 하루빨리 확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라며 ‘원안’을 언급했다.

특히 김포시, 하남시, 인천 서구, 서울 강동구 등에는 여당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들이 많다. 이들 역시 동시다발로 ‘원안’을 들이밀고 있다. 그러나 이 ‘원안이란 것’은 애초에 후보군에도 포함된 적이 없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국가철도망 ‘가안’에는 ‘이번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후 추가로 검토할 철도 노선으로 모두 24개 구간을 밝혀두고 있다. 이른바 ‘후보 노선’이다. 그런데 이 목록에도 GTX-D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결국 전국에 걸친 국가철도망 계획들 가운데 ‘김포에서 강남 거쳐 하남 간다’는 하나의 노선만 극히 부각되고 있는데, 이 노선 자체는 ‘유령’에 불과하다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철도는 굉장히 정치적인 SOC(사회간접자본)다. 선거철만 되면 새로운 철도 노선과 관련된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난립한다. 지역구 정치인들은 ‘희망에 찬’ 지역 주민들로부터 정치적 압력을 받는다.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이 국토교통위원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교통위 위원은 상임위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과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을 불러 직접 지역구 철도 노선망을 따질 기회를 얻는다.

실제 국회 국토교통위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2019년 7월8일 열린 제369회 국토교통위(20대 국회) 회의록에는 각 지역 의원의 ‘노골적인 압력’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날 정동영 당시 의원(지역구 전북 전주병)은 코레일 손병석 사장에게 “지금 KTX 없는 동네는 지방 소멸 위기에 몰린다. 전라북도 김제시가 지금 (인구가 줄어) 8만명이다. 그런데 KTX가 안 선다. 김제시장님이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는데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시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주승용 당시 의원(지역구 전남 여수을)은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제4차 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기 위해 전라선 고속화 추진 방안에 대해 지금 사전 타당성 조사를 착수하고 있다. 그런데 용역한다고 시간 다 보내고 있다. 내년에 4차 철도망 구축계획 해야 되잖나”라며 타당성 조사 기간이 길다고 따져 물었다.

이들 정치인에게 철도는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도 괜찮은 문제다. 철도망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고 유권자들에게 전시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할 따름이다. 철도가 놓일 것이라는 희망만 지역구에 확산시킬 수 있다면, 철도는 정치인에게 대단히 효과적인 정치적 자산이 된다.

그러나 막상 가장 중요한 문제, ‘철도를 어떤 돈으로 지을 것’이며 ‘운영할 때 생기는 적자는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는 정치의 영역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다. 이 문제는, 두 곳 이상의 지역에 걸쳐 운행되는 광역철도망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예컨대 과거 ‘국철’로 불린 수도권 지하철 1호선처럼 코레일이 운영(일부 구간은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노선에서는 중앙정부가 더 큰 책임을 지게 마련이다. 반면 현행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업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신설 광역노선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건설과 운영을 책임지도록 되어 있다. 막대한 건설비용과 적자가 예상되는 노선의 비용 보전을 두고 중앙정부의 재정 당국과 지자체 간 갈등이 반복되는 중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최소한 주요 간선 철도의 초기 단계에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철도망 통해 부울경 800만 도시로 확장해야” 기사 참조).

5월7일 GTX-A 용인역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윤성원 국토교통부 제1차관. ⓒ국토교통부 제공

“우리 세금으로 수도권 철도망만 확장”

광역철도 건설비용과 운영에 대해서는 올해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광역철도 제도개선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그 결과를 오는 9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광역철도 지정 요건과 운영 방법, 운영 주체에 대한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여겨서다. 현행법상 광역철도 물리적 요건인 거리 반경을 기존 40㎞에서 80㎞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비수도권 광역철도망은 이제야 기틀이 하나둘 만들어지는 중이다.

철도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에 가깝다. 철도는 도시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국토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세금으로 확보한 정부의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고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자연스럽게 정치 영역이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 철도라는 자원의 배분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정치인의 수’가 모자라는 비수도권은 수도권에 비해 불리한 협상 구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비수도권의 교통에서 자연스럽게 철도보다 자동차가 우세해진 이유 중 하나일 터이다. 철도 이용의 비용 중 상당 부분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나오는 데 비해 도로교통에선 ‘운영비(연료, 자동차 감가상각비 등)’가 전적으로 자동차를 모는 ‘개인’에게 전가된다. 한마디로 ‘이동의 비용’이란 측면에서 보면, 도로교통이 우세한 비수도권 주민들이 수도권보다 더 높은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비수도권 처지에서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수도권 광역철도망만 확장된다”라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GTX-D 논쟁에 가려져 있는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비수도권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철도 타당성 용역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기 일쑤다. 철도 인프라에서 소외되었던 것도 ‘지금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비수도권 도시들은 ‘인프라를 깔아야 사람이 머물고, 그래야 장기적으로 경제성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철도 같은 대중교통은 ‘소득 이전’을 발생시킨다. 수도권 광역철도망 건설·유지에 투입된 정부 예산은 수도권 일부 주민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비수도권 주민들의 자산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대중교통 이용 비율이 높은 청년층이 노년층의 무임승차 비용을 대체하는 것도 일종의 소득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철도와 연관된 ‘돈’ 문제는 이처럼 지역·계급·세대별로 차별적 비용과 편익을 낳는다.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 철도가 주목받고 있는 만큼,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돈’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가령 수도권 주민들에게 ‘혼잡세’를 부과해 이를 비수도권 광역교통망 운영에 투자할 수 있다. 세대별 인구 가운데 가장 다수인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무임승차 혜택을 줄여 이 비용으로 청년과 비수도권 이용객에게 혜택을 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철도는 단지 ‘우리’ 지역의 부를 늘리기 위한 노선 유치 문제가 아니다. 철도는 도시와 국토를 재조직하고 그 안에서 더 정의로운 재분배를 상상하고 입안할 수 있는 강력한 공공정책의 수단이기도 하다. GTX-D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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