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갖고 싶어, 지금 당장’···폴라로이드가 응답했다

2019.01.10 14:20 입력 2019.01.10 14:25 수정

2019.1.1. 선유도의 아침. ⓒ 김창길

2019.1.1. 선유도의 아침. ⓒ 김창길

알파벳 ‘P’가 뒤집힌 ‘불가능한IM?OSSIBLE’ 프로젝트였다. 디지털 공세에 밀려 문을 닫아야만 했던 네덜란드 폴라로이드 필름 공장을 지키던 안드레 보스만 기술부장이 한 기업가와 의기투합했다. 폴라로이드의 필름은 계속 생산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를 운영했던 미국 피터스그룹은 그들의 필름 생산 계획을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비꼬았다. 피터스그룹이 폴라로이드의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들은 시원시원했다. 남들의 비아냥거림에 의기소침하기는커녕 그것을 즐겼다. 우리 계획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들은 회사 이름을 ‘임파서블’로 정했다. 베를린, 빈, 뉴욕, 그리고 도쿄에 임파서블 프로젝트 사무실을 차렸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년 후인 2010년 임파서블은 폴라로이드 필름 공장을 다시 가동시켰다. 전 세계에 보급된, 옷장 속에 틀어박혀 있던 10억대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탁! 스르르르륵.

개 혓바닥처럼 날름 내미는 사진을 흔들어대는 손놀림. 사진의 손맛을 잊지 못한 마니아들은 폴라로이드의 부활을 환영했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스테디셀러를 이어갔다. 그리고 2017년 임파서블은 드디어 불가능한 임무를 완성했다. 임파서블 최대 주주가 폴라로이드의 상표권을 다시 되찾았던 것. 임파서블의 새로운 이름은 ‘폴라로이드 오리지널’이다.

2019.1.1. 선유도의 아침. ⓒ 김창길

2019.1.1. 선유도의 아침. ⓒ 김창길

2019년 새해 첫날, 초등학생 딸의 하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려 한강시민공원을 찾았다. 선유도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양화나루터에는 바주카포를 연상케 하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가지고 나온 많은 사진가들이 포진해 있었다. 깜깜한 하늘을 서서히 밝히는 여명. 손목시계의 바늘은 해가 떠오르는 시각 오전 7시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셔터 소리 합주는 1분을 넘기지 못했다. ‘에이씨!’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오메가 일출을 아쉬워하는 사진가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제, 내 차례다.

탁! 스르르륵.

사진가들의 대열에서 앙증맞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둔탁한 셔터 버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씨!’ 나의 첫 방도 실패다. ‘탁!’ ‘탁!’ ‘탁!’ ‘탁!’ 네 번째 사진부터 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었다는 풍경사진의 거장 앤설 애덤스의 사진만큼은 아니겠지만, 새해 가족 선물 정도로는 괜찮은 것 같았다. 성산대교 위로 펼쳐지는 양털구름 풍경도 제법이었다.

밀랍인형 박물관 그레뱅 뮤지엄의 마릴린 먼로를 즉석 카메라로 사진 찍는 앤디 워홀. 먼로 옆에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은 배우 리즈 테일러의 초상.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밀랍인형 박물관 그레뱅 뮤지엄의 마릴린 먼로를 즉석 카메라로 사진 찍는 앤디 워홀. 먼로 옆에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은 배우 리즈 테일러의 초상. / 경향신문 자료사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독특한 체험이다. 폴라로이드는 디지털 카메라보다 다소 긴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든 찍는 즉시 구경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즉석카메라의 한 종류다. 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진의 물질성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카메라와 아주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폴라로이드를 필름 카메라의 범주에 묶을 수는 없다. 그것은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필름이 없다. 오로지 단 한 장의 사진만을 우리 손에 남겨놓는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발터 베냐민은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한 ‘아우라(Aura)’의 상실을 아쉬워했다. 아우라는 ‘지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찰나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카메라의 복제성은 이미지의 유일성과 원본성을 파괴하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카메라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민주주의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지의 신비로움은 저 멀리 달아난 것이다.

하지만 폴라로이드가 만들어내는 사진은 발터 베냐민이 말했던 사진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폴라로이드의 사진만큼은 아우라를 살릴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 한 장의 사진만 손에 들려주는 폴라로이드의 사진에서 애틋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두운 암실이 아닌 밝은 세상에서 유령처럼 서서히 나타나는 이미지다.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 화답하는 사진 에세이 <유령 이미지>를 쓴 에르베 기베르는 폴라로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애호가를 사진 현상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외부의 시선과 검열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허락했다. 그것은 애호가를 편집광에서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폴라로이드의 목표는 완전함이었고 컬러였으며 다른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고 시장을 넓히기 위해 조작 방식을 최대한 단순하게 하는 SX-70이었다.”(에르베 기베르, <유령 이미지>, 알마, 151쪽)

에르베 기베르, 안보옥 옮김. <유령 이미지> 표지, 알마 출판

에르베 기베르, 안보옥 옮김. <유령 이미지> 표지, 알마 출판

기베르는 폴라로이드를 포르노그래피 도구라고 말했다. 개인 암실을 갖고 있는 사진작가가 아닌 이상 사진은 현상소에 맡겨야 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알몸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은 사진 현상의 번잡한 절차 때문에 억눌려 있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는 타인의 어두운 암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폴라로이드는 어른들의 장난감인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폴라로이드는 하나의 장난감이다. 폴라로이드로 사진 찍기는 아주 쉬운 사진 행위다. 모양새도 요지경 비슷한 장난감을 닮았다. 구멍에 두 눈을 갖다 대고 버튼을 누르며 그림을 돌려보는 요지경처럼 아이들은 한쪽 눈을 감고 동그란 셔터 버튼을 누른다. 요지경은 그림이 움직이는 재미를, 폴라로이드는 하얀 종이 위에 서서히 나타나는 유령 놀이를 아이들에게 선사한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어설프다. 피사체를 정중앙에 놓고 셔터 버튼을 눌러봐도 폴라로이드가 뱉어내는 사진은 펑퍼짐한 이미지다. 초점이 없으니 거리감, 원근감도 없다. 백사장을 뛰어노는 아이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지는 수평선은 마치 어린이가 색연필로 그린 그림 같은 사진들이다. 정확함, 명료함이 사진의 무기인데, 폴라로이드는 그것을 내려놓고 그림으로 다가간다. 대가의 그림은 아니다. 아마추어의 밑그림 정도. 옛날 사진작가들은 정교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전, 사진의 밑그림을 그리듯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엽서다. 본래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손끝으로 잡고 정착액을 말리기 위해 마련된 여분의 하얀 공간은 글을 적어 넣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자라면 고독함을, 둘이라면 영원히 변치 말자는 우정의 메시지가 담긴다. 사진이 한 장이니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귀한 선물일 수밖에 없다. 친구야, 지금 여기에 있었던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자며 건네받는 우정의 징표인 것이다.

그런데 폴라로이드 사진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정식으로 가족이나 개인 앨범에 수록되지 않고 사적인 공간에 전시되거나 지갑 속에 휴대된다. 액자에 담기는 일도 드물다. 핀으로 벽에 꽂히고 테이프로 유리에 부착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그렇게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로 시간을 견뎌 내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쉽게 떨어져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폴라로이드 사진은 다른 사진들보다 쉽게 빛이 바래진다.

인화지에서 툭 터지면서 쉽게 새겨진 빛의 자국은 거꾸로 쉽게 사라질 것 같다. 천연색이 파스텔 톤으로, 그리고 세피아 톤으로 흐려져 간다. 그래서 폴라로이드 사진은 애절하다.

2018년 11월 뉴욕 어메리칸 아트 휘트니 뮤지엄에서 열렸던 앤디 워홀 전시회에 포토마통에서 찍은 사진을 이용한 셀프 포트레이트 실크스그린 작품이(왼쪽) 걸려 있다. / UPI 연합뉴스

2018년 11월 뉴욕 어메리칸 아트 휘트니 뮤지엄에서 열렸던 앤디 워홀 전시회에 포토마통에서 찍은 사진을 이용한 셀프 포트레이트 실크스그린 작품이(왼쪽) 걸려 있다. / UPI 연합뉴스

잘생긴 스타의 얼굴 사진도 아니다. 거리를 걷다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즉석사진일 뿐이다. 연파랑으로 덧칠한 덕분에 예술품으로 거듭난 것일까? 2017년 런던 소더버그 경매에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셀프 포트레이트 즉석사진이 780만달러에 팔렸다. 1963년 노점 즉석사진관 포토마통을 이용한 앤디 워홀의 첫 셀프 포트레이트 작품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똑같은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다며 미국을 찬양했던 앤디 워홀에게 포토마통은 누구나 잠시 임대할 수 있는 작은 극장이었다. 커튼을 치고 동전을 넣으면 짧은 단막극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많아봐야 3명. 장막으로 가려진 극장 속 주인공들은 다소 대담해진다. 연인들의 키스 정도는 진부한 레퍼토리다. 부끄럼 많을 줄 알았던 아가씨들도 포토마통 극장에서 한번쯤은 에로틱한 배우가 된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주인공들의 손에는 네 장의 단막극 콘티가 완성된다. 앤디 워홀은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의 (단막극)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예언도 남겨놓았다.

포토 마통. 1927년 경. / 퍼블릭 도메인

포토 마통. 1927년 경. / 퍼블릭 도메인

간이 즉석사진관 포토마통이 처음 설치된 곳은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1659번지 거리였다. 1927년 4월 타임지는 포토마통의 대중적 인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분을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6개월 동안 28만명을 기록했다.’

8분 만에 8장의 사진이 나오는 포토마통은 이듬해 유럽으로 건너갔다. 파리에 설치된 포토마통 앞에 줄을 선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일체의 의식을 배제한 자동기술법을 통해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포토마통의 자동성에 매료됐던 것 같다. 포토마통은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명령하는 사진가 없는 스튜디오다. 피사체인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통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와도 다르다. 그것은 자동기계가 무참히 찍어내는 이미지들이다. 그런 자동 사진기계 앞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눈을 감았다. 무슨 꿈을 꾸고 있던 것일까?

겨울방학에 돌입한 딸아이와 함께 찾은 극장 한쪽에 간이 즉석사진관이 눈에 띄었다. ‘아빠랑 인생사진 네 컷 찍을까?’ 빨간 커튼을 열고 작은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자, 눈을 감아볼까?’

딸아이가 물었다. ‘사진 찍는데, 왜 눈을 감아?’

나의 대답이다. ‘꿈을 꾸기 위해서야. 우리 딸, 올해는 무슨 꿈을 꿔볼래?’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