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힙합 노선을 고수하면서도 매번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으로 실험성까지 겸하는 에픽 하이의 다섯 번째 앨범은 그러한 노력이 전면에 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랩 음악 정수에 21세기 팝의 중심 트렌드인 일렉트로니카를 비롯해 록과 클래식 등이 버무려져 튼실하게 들리는 사운드, 진지한 노랫말은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넬은 가장 성실하게 발전해 온 밴드다. 인디 출신으로 주류 무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브릿팝 추종자라는 빈축 속에서도 자신 만의 색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그리고 < Separation Anxiety >에서는 드디어 독자적인 앨범 미학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싱글의 파괴력과 앨범의 완성도를 동시에 획득한 이들. 우리는 이런 밴드가 필요하다.
음악에 접근하는 차이의 해법을 '연주'에 대한 고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준 음반. 1집에서는 피아노의 테크닉적인 기교를 실었다면 2집에서는 '기타'라는 사운드의 발견으로 곡을 그려나갔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그가 습관화된 선율을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음색에 대한 갈증으로 선택한 '기타'였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악기의 미묘한 음색 차이에 따라 채워나간, 온전히 '사운드'의 감성으로 완성해낸 앨범이다.
랩이 있지만 완연한 힙합 앨범으로 규정하기가 망설여질 만큼 배치기의 이 앨범은 '하이브리드' 성향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록, 스카, 펑크(Funk), 레게 등 거듭 체형을 바꿈으로써 샘플링이 주가 되는 일반적인 힙합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선함을 만끽 가능하게 한다. 노래인지 랩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무웅의 보컬과 속도에 강한 탁의 빠른 래핑이 빚어내는 환상의 궁합도 앨범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Various Artist
< Beyond >
상상마당이 기획한 '밴드 인큐베이팅'의 일환으로 제작된 옴니버스 앨범이다. 소울, 펑크(Punk), 퓨전, 팝에 이르기까지, '밴드'로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신인 11팀의 신선한 접근을 통해 재해석되어 담겨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대안과 산소가 '밴드'에 있음을 주장하는 '웰-메이드' 컴필레이션 앨범.
전작보다 더 스케일 커진 사운드와 더 밀도있는 내러티브가 확실히 밴드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우아하게 부유하는 음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힘있게 뻗어나가는 나인의 목소리는 더욱 진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성급한 방향전환보다는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확대, 발전시켜서 자신들의 밴드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신승훈'과 '모던 록' 모두 새롭지 않은 말이지만, '신승훈의 모던 록'은 새롭다. 올해 돌아온 90년대 음악 영웅 중 가장 신선한 컴백! 전면적인 변화를 꾀했음에도 고유의 멋을 잃지 않은 것 또한 장점이다.
하우스 룰즈
< Star House City >
전자 색소폰, 오토 튠, 하드 엣지(Edge) 사운드로 더 날카로워졌고, 그로인해 더 펑키해졌다. 일렉트로니카 마니아와 마냥 댄스가 좋은 팬들 모두를 미치게 할 앨범. 꿈, 희망, 사랑의 별들이 모여 있다는 'Star House City'로 여행을 떠난다는 컨셉은 즐거운 보너스다.
콜드플레이를 옥죄던 '팝 록', '포스트 라디오헤드(Radiohead)'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사회적 영역까지 포괄한 노랫말은 진중함과 깊이를 더했고, 3분 미학의 탈피는 '대중적' 록 밴드라는 편견을 불식시킨다. 평판과 완성도에 있어 이전 작품들과 확실히 차별 선을 그은 앨범.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을 듯하다. 2008년 올해의 보컬 앨범. 작년 한해를 달구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에 이어, 빈티지 소울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인이 등장했다. 첫곡 'Rockferry'부터 'Distant dreamer'까지 감탄의 연속을 만들어내는 실력이 단연 발군이다.
통속적 록 개념에 도전하는 차세대 주조술이 빛났다. 샘플링, 랩, 노이즈 록, 펑키 리듬 등, 다양한 장르를 기괴한 무드로 콜라주한 초(超) 현실적, 초(超) 록적인 대안이 여기 있다. 자기만의 소우주 속에서 창조한 올해 가장 빛나는 재기다. 실험 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원숙함, 깊이가 느껴지는 보컬은 단 한 번만 들어도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아델의 데뷔작은 레트로 소울, 빈티지 사운드 열풍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활약이 대단했던 2008년 팝 음악계에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
어려운 앨범은 듣기 힘들다는 편견을 엠지엠티는 이 앨범 하나로 보기 좋게 깨부순다. 어지러운 사이키델리아와 낭만적인 무드,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혼연일체를 이룬 < Oracular Spectacular >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장관'을 펼쳐놓는다. 신인의 손에서 나온 데뷔작이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일정량의 인기와 인정에 머물렀던 그들이 매머드 급 흡인력과 다이내믹으로 무장해 돌아왔다. '곡' 수준의 창작력이 '앨범' 수준으로 확장했으며, 헤비해진 기타와 함께 음악적 중량도 묵직해졌다. 'Chasing cars'로 획득한 대중적 성공에 뒤이어 명백한 '실력파' 밴드임도 확실히 못 박았다.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될 앨범이다.
영국 내에서만 150만장을 팔아치운 '2008년 가장 주목받는 스타' 리오나 루이스의 데뷔 앨범. 소녀의 재능을 단번에 디바 급으로 끌어올린 노련한 제작진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셀린 디온(Celine Dion)을 이어가는 파워 보컬리스트로 그녀를 인도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한 그녀의 마차는 12시가 지난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
10년의 기다림을 말끔히 보상하는 작품. 1집의 기괴함, 2집의 공포를 거쳐 3집은 '압도'라는 말로 그 느낌을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포티셰드의 무표정한 우울은 병약하지 않으며 표피적이지 않다. 상상을 초월하게 무겁고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장착한 사운드는 말 그대로 사람을 압도한다. 2008년의 컴백이다.
요즘 흑인 음악계엔 좋은 멜로디의 곡들이 너무 드물다. 정통적 팝 미학의 훌륭한 유산을 이 시대는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니-요의 음악은 단연 돋보인다. 대중성, 신(新) 감각, 격을 갖춘 선율들이 앨범 속에 가득하다. 'Closer'. 'Mad', 'Miss independent'는 특히 대단하다.
■ 올해의 싱글
넬
'기억을 걷는 시간'
< Separation Anxiety >
2008년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곡 가운데 주류를 석권한 유일한 비주류 감성의 노래.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통해 축적된 친근한 터치가 여름 거리의 전파대첩을 일궈냈다. 이 노래로 그들은 하우스홀드 네임이 됐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얻는 팬들의 두터운 지지와 구성 좋은 퍼포먼스가 곡의 인기에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컨템퍼러리 알앤비의 트렌드를 적극 흡수한 잘 빠진 편곡과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진 '나쁜 남자' 콘셉트의 가사는 많은 젊은이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고 그들로 하여금 태양만을 바라보게 했다.
테크노가 중심이 되어 일렉트로니카, 록, 클래식의 요소를 중독성 강한 소스에 버무려냈다. 좀처럼 명암을 가려낼 수 없는 오묘한 보컬과 입에 감기는 라임을 비롯한 변화와 유지의 세심한 안배는 대중이 원하는 즐거움의 재료로도, 에픽 하이가 짊어진 5집 가수의 위치적 과제로도 모자람이 없다. 리스크를 스릴로 받아쳐내는 세 남자의 실험은 성공적이다.
윤하
'Gossip boy'
< Someday >
어린 에너지와 로큰롤의 질주감이 만나 상쾌하고 짜릿하다. 댄스로 획일화 된 '소녀' 열풍 속에서 당당히 '록'을 들고 나온 것도 매우 신선했다. 노래 실력도 또래 가수들을 단연 압도한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여자들의 치마 길이는 짧아지고, 원색적인 컬러가 유행한다고 했던가. 이제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점점 짧아지는 곡의 길이와 후크의 진입 시간, 어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뿅뿅'사운드와 단 4마디에 곡의 사활이 달려있는 무한 반복의 미학이 바로 경제 침체의 새로운 히트 공식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가요계의 접근법이라면 '어쩌다'는 이에 완벽히 부합하는 2008년 최고의 '유행가'였다.
오래된 테잎이 늘어져 버린 것 같은 스트링 사운드, 둔중한 리듬, 능란함과 여유로 그득한 더피의 음색은 그야말로 1960년대 소울 사운드의 완벽한 재현. 이렇듯 그녀의 목소리는 복고를 통해 '명징함'을 획득하고, '깊이'에서 오는 진한 울림을 선사한다. 'Warwick avenue'는 단순히 사운드의 장치뿐 아니라 몰아치는 선율의 악센트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곡과 보컬의 만남이다.
존 메이어(John Mayer)
'Say'
< The Bucket List OST >
정규 앨범이 아닌 영화 사운드트랙 참여 곡에서도 수작을 만들어낸다. 이런 놀라운 재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감각과 실험이 곧 아티스트의 음악성으로 평가되는 현 시점에서 정통과 노련함으로 승부하는 이 젊은 거장의 음악은 쉬지 않고 좋다. 가사, 멜로디, 내츄럴한 악기 사용 등의 음악의 기본 줄기가 튼튼함은 물론, 여유, 긍정, 따스함이 묻어나는 감성 측면에서도 좋다.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역작. 둔탁한 808 비트, 차갑고 거친 오토 튠 목소리, 그 흔한 랩도 하나 없는 이 건조한 음악이 신선하고, 재밌고, 심지어는 중독적이게 들린다. 출중한 재능이 빚어낸 탁월한 감각!
티.아이(T.I)
'Live your life'
< Paper Trail >
이 노래를 들으면 코러스를 장식하는 데 쓰인 오존(O-Zone)의 원곡을 잊게 된다. 우스꽝스러운 현영의 '누나의 꿈'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리아나(Rihanna)의 모습만 선명하다. 몸을 들썩거리게 하는 묵직한 비트와 랩 음악의 전통적 추임새가 그녀의 목소리와 합쳐져 흥을 돋운다. 주인보다 더 멋진 손님으로 빛나는 노래다.
팅 팅스(Ting Tings)
'Shut up and let me go'
< We Started Nothing >
당분간 복고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디스코, 뉴 웨이브, 올드 스쿨 힙합, 20세기에 출생한 음악을 섞어서 만든 21세기의 경쾌한 록 댄스곡이 이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