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룰로이드 드림

'슬로우 웨스트'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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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0. 16:09

이웃추가

존 매클린 감독의 10월8일 개봉작

'슬로우 웨스트'를 보았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코디 스밋-맥피가 주연한

'슬로우 웨스트'는 이색적인 서부극입니다.


제목 자체가 기존 서부극과 전혀 다른 

이 영화의 리듬이나 지향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여정은 느릿느릿 진행되고 인물이나 말은 결코 달리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전방위적으로 휘몰아치며 삽시간에 절정에 도달해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면모도 가지고 있지요.



극중 서부는 혼란스럽고 폭력적이며

미신과 기만과 오해로 점철된 곳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조리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서부를

외부에서 온 소년이 순정으로 선명하게 가로지르는 여정은

서부극의 틀 속에서 이 영화가 구현해내려고 하는 것이

결국 동화적인 로드무비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슬로우 웨스트'는 정교한 작법과 공들인 촬영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고도 명징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촬영지인 뉴질랜드의 풍광이 내내 멋지게 펼쳐집니다.)


운율을 고려한 암시적 대사에서

특정한 시각적 모티브를 반복하는 방식까지,

시적인 리듬이 전편에 흘러넘칩니다.


요소요소에서 로우앵글과 광각렌즈가 결합된 쇼트들로

공간에 대한 인물의 긴장감에 인상적인 방점을 찍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결말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이전 장면들 속의 다양한 복선을 통해 암시되거나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런 복선은 특정한 화면 구도에서 인물들의 상호작용 양상까지

다양한 요소들 속에 세심하게 묻혀 있지요.



제게 '슬로우 웨스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신비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꿈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우 인상적인 묘사가 이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안온하면서도 여운이 긴 엔딩도 이 영화에 있지요.


(별점 아래 내용에는 이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1.

제가 생각하기에 '슬로우 웨스트'의 이야기는

오리온 신화를 핵심 모티브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연인인 오리온을 제대로 보지 못해 죽이게 되는 이 신화는

실로 다양한 형태로 '슬로우 웨스트'의 밑그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2.

로드무비는 흔히 성장영화가 됩니다.

이 영화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이때 결국 성장하게 되는 자는

제이가 아니라 사일러스겠지요.


이건 이상주의자가 현실주의자의 삶에 남긴

아름다운 흔적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까요.



3.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17명의 죽음을 16개의 쇼트에 역순으로 담은

굉장히 인상적인 몽타주로 마감됩니다.


그런데 이 몽타주에는 이전의 극에서 묘사된 죽음들 중

딱 한 사람의 죽음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건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제이 삼촌의 죽음인데,

결말에서 그의 죽음이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슬로우 웨스트'가 어디를 바라보려고 하는 영화인지를

곰곰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동진 POWER blog
이동진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밤은 책이다' 중에서.)